본문 바로가기

book review

천 개의 파랑-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천선란 작가의 장편소설

천선란 작가의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에 대한 리뷰

-도서명: 천 개의 파랑

-저자: 천선란

1. 이야기의 시작

소설은 결말의 한 장면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수가 경주 중인 말에서 떨어지고 있는 장면이다. 떨어지는 기수는 정확한 수치와 계산에 의해 결과를 말하는 휴머노이드였다. 폐기를 앞둔 기수,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가 함께 마지막으로 경주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휴머노이드 기수는 곧 낙마하여 몸이 부서지겠지만, 침착하게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유를 되돌아본다. 휴머노이드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브로콜리의 색과 닮아 붙여진 그의 이름은 콜리이다.

2. 콜리에 대한 이야기

콜리는 콜리라고 불려지기 전 C-27로 불렸다. 콜리는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만들어진 부품들로 조립되어  2035년 한국에서 탄생되었다. 콜리가 다른 기수 휴머노이드와 다른 점은 조립되는 마지막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칩이 잘못 삽입되었다는 것이다. 그 칩은 인지와 학습 능력을 넣어두었던 칩으로 학습 휴머노이드를 위한 것이었지 경마에 사용될 휴머노이드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인간의 사소한 실수로 콜리가 탄생했다. 콜리가 처음 눈을 뜬 것은 대전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화물칸 안에서였다. 화물칸에는 좁은 창이 나 있었는데 그 창으로 콜리는 밖을 구경할 수 있었다. 거기서 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던 콜리는 '찬란하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이 그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자신을 시험해보듯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창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단어들을 말해본다. 끝없이 뱉어내던 단어는 목적지에 도착하며 멈췄다. 천 개. 콜리가 떠올린 단어는 천 개였다. 그렇게 경마장에 도착하고 콜리는 '투데이'라는 이름의 흑마를 배정받는다. 콜리는 자신에게 배정된 흑마 투데이와 하루 5시간씩 훈련했다. 훈련을 하는 동안 오랜 시간 하늘과 경기장 외벽 너머의 나무를 관찰했다. 하늘은 매일, 매시간 색과 모양이 바뀌었다. 그것을 표현하려면 세상의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콜리는 더 많은 단어를 배우고 싶었다. 그리고 점차 다른 휴머노이드는 자신처럼 하늘을 보거나, 말의 목덜미를 쓸거나,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갔다. 자신이 오작동된 것임을 깨달았다. 

 

콜리는 말의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진동과 떨림으로 투데이의 기분을 느꼈다. 투데이는 당근을 먹을 때, 빠른 속도로 달릴 때 기뻐했다. 그리고 투데이가 기쁘다면 자신도 기쁘다고 생각했다. 둘의 성적은 점점 좋아졌고 투데이의 몸값도 뛰어올랐다. 콜리는 투데이의 등에 앉아 달릴 때마다 자신도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호흡은 생명의 특권이었고 콜리도 살아 있음을 느꼈다. 적어도 투데이가 달릴 때만큼은. 그것은 투데이도 마찬가지였다. 투데이는 시속 100킬로미터를 달리며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투데이는 신기록을 경신하고 3개월 만에 무너졌다. 속도가 떨어지고 몸값은 떨어졌으며 사람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투데이는 치료가 필요했지만 계속 경기에 나가야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콜리는 경주중 스스로 말에서 떨어졌다. 투데이가 자신의 무게를 힘겨워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실격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콜리는 뒤따라 달려오던 말발굽에 밝혀 하반신이 전부 부서졌다. 기수로서 존재의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된 것이다. 

3. 삶의 2막

콜리는 마방 옆 건초더미에 누워 자신을 수거하러 올 하청업체 사람들을 기다린다. 콜리는 아마 조각조각 나뉘어 다른 기계의 부품으로 쓰이거나 경마 박물관에 박제될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되도록 오랫동안 하늘이 보고 싶었다. 그때 콜리는 연재라는 소녀를 만났다. 연재는 말들의 울음소리와 경마장의 함성을 들으며 자랐다. 투데이를 보러 경마장에 들른 연재는 그곳에서 부서진 콜리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잠깐의 대화를 통해 콜리가 다른 휴머노이드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더더욱 콜리를 폐기 처분되도록 둘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아 망가진 콜리를 사서 결국 집으로 데려왔다. 집으로 데려온 콜리를 분석하며 낙마의 이유가 기계적 결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조금씩 콜리의 몸을 고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재는 망가진 휴머노이드에게 콜리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콜리는 그렇게 콜리가 된다.

 

콜리는 연재의 집에 적응하며 연재의 엄마와 언니, 친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간다. 콜리는 이곳이 좋았다. 콜리는 어렵게 구한 부품과 연재의 설계에 의해 재조립되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투데이가 안락사당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는다. 콜리는 투데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투데이가 한 번 더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걸로 짧게나마 투데이의 삶을 연장할 수 있었다. 투데이를 다시 경주로에 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투데이는 달릴 때 행복한 아이다. 달림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했다. 콜리는 마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경주로를 달리는 것이 투데이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 확신했다. 실제로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하던 투데이는 몇 주 만에 밖으로 나와 경주로를 조금씩 달리며 행복해했다. 투데이는 뛰지 않는 훈련을 했다. 다치지 않을 만큼 느긋하게 달려야 했다. 느리게 달린다고 경기 도중 퇴출당하지는 않으므로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했다. 경주가 끝나고 투데이는 뉴스를 통해 관절이 다 닳도록 달린 '기적의 말'이라고 불려진다. 경주마의 실태가 세상으로 알려지며 투데이의 생명을 지켜주자는 청원이 올라오게 되고, 먼 훗날 제주도로 넘어가 초원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콜리의 삶은 그것을 알기 전에 끝이 난다.

4. 천 개의 파랑

경주가 시작되고 투데이는 아주 느린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들려온다. 하지만 이 주로는 투데이만 달릴 수 있다. 관중석의 야유는 중요하지 않다. 콜리는 투데이가 행복해하고 있음을 느낀다. 몸이 떨리고 있으므로.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투데이의 바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조립되며 무거워진 콜리의 무게는 투데이에게 방해가 된다. 제 속력을 내지 못하게 되고 무릎에 무리가 갈 것이다. 그래서 고삐를 놓는다. 콜리는 다시 복구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가 망가질 걸 알면서도 추락한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낙마의 순간에서 콜리는 충분히 모든 나날을 되짚을 수 있을 정도의 아주 긴 시간을 보낸다. 하반신에서 상체까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으나 푸르고 눈부신 하늘이 보였을 뿐이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콜리는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짧은 삶 동안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이름을 알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콜리에게는 좌절, 시련, 슬픔 이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 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