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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온 세상의 세이지-본디소 소설

'본디소'의 SF소설 <온 세상의 세이지>에 대한 리뷰

-도서: 온 세상의 세이지

-저자: 본디소

해가 떠있는 바다

1. 사현과 세이지의 첫 만남

홍사현은 집 근처 칵테일 바에서 세이지를 처음 만났다. 세이지의 첫인상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양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사나운 눈매, 거친 음색, 금색으로 탈색한 머리, 양쪽 귀에 피어싱, 목덜미를 뒤덮은 뱀 문신. 전형적인 반항아였다. 사현에게 세이지를 소개해준 건 친구 은재였다. 사현은 자신이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했음에도 은재가 왜 세이지를 자신에게 소개해줬는지 알 수 있었다. 왼쪽 눈가, 같은 쪽 입가, 가슴팍과 등, 오른팔에 있는 문신. 양쪽 귀와 오른쪽 눈썹까지 열 개가 넘는 피어싱. 거기에 무표정을 한 사현도 만만찮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사현은 세이지가 자신과 같은 생존법을 택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무장한 겉모습으로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것이다. 마침 사현은 혼자 살기에 넓은 집을 가지고 있었고 유학생인 세이지는 헤어숍에서 일하며 집을 구하고 있었다. 사현은 의외로 쉽게 세이지가 집에서 지내는 것을 허락했고 그렇게 동거 생활이 시작됐다. 

 

결론적으로 둘은 연애를 하게 되었다. 둘은 의외로 잘 맞았고 금방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사현은 같이 살면서 세이지에 대해 알아갔다. 세이지는 사교적인 성격이어서 친구가 많았으며 외박도 자주 했지만 반대로 한 게임에 꽂히면 오랫동안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연애관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연애가 인생의 후순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언제나 미련 없이 연애를 끝냈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둘이 연애를 시작했으니 금방 헤어질 거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 해가 지났다. 어느 날 겨울 바다를 보고 싶다는 세이지에 의해 둘은 속초 바다로 간다. 날은 추웠지만, 바다는 멋있었다. 그리고 해안가를 걸으며 세이지는 생각보다 사현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사현은 평생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없다고 생각한다. 세이지와 하는 건이 무엇인지는 답을 내리지 못한 채.

 

2. 세이지와의 이별

잠에서 깬 사현의 눈에 막 퇴근을 한 세이지가 보였다. 게임 회사에서 온 택배를 들고 있는 세이지. 세이지는 퇴근하자마자 게임의 베타 테스트를 위해 거실에서 VR 헤드기어를 쓰고 전원을 켰다. 본격적인 베타 테스트를 시작하려 하는데 헤드폰 너머로 사현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 헤어지자." 세이지는 만남처럼 이별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세이지는 일본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헤어짐 때문은 아니었다. 유학을 충분히 마쳤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미용실을 차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현은 당황한다. 헤어져도 세이지가 떠나지 않고 집에 계속 같이 살 줄 알았던 것이다. 세이지와 말다툼 후 침실로 들어와 상황을 회피해버리며 잠든 사현은 다음날 세이지가 집에 없음을 알게 된다. 세이지는 자신의 짐을 보낼 주소만을 남기고 이미 떠나버린 것이다. 사현은 충동적인 세이지에게 섭섭함을 느끼지만 그 무렵 은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공항고속도로에서 연쇄 추돌사고가 났고 세이지도 거기에 있었다는 전화였다.

 

그날의 사고로 세이지는 양손을 잃는다. 그 사실을 덤덤히 전하는 사현은 흐느끼는 세이지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편도체 기능에 이상이 있어 정서 발달이 쉽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진단을 듣던 순간을. 사현은 손을 잃고 우는 세이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공감하지 못하는 감정을 숨기며 그저 괜찮다고 말해줄 뿐이었다. 힘들어하는 세이지의 곁에 사현이 함께 있어 준다. 당연했던 일상을 혼자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세이지는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사현에게 자신의 병원비를 부담하게 하고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것도 버거워한다. 세이지의 상태는 점점 악화됐고 사현은 그에게 어떤 것을 해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변화는 세이지가 일을 구하면서 갑자기 찾아왔다. 일을 구했다고 말한 다음 날 세이지는 갑작스럽게 사현을 떠난다. 세이지는 다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세이지와 연락할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세이지로부터 달마다 일정 금액이 입금된다. 세이지가 신세 졌던 병원비, 생활비, 집세를 합한 금액이 훌쩍 넘을 때까지. 시간이 흘러 사현에게 세이지는 점점 기억 속에 희미해진다. 하지만 세이지는 사현의 삶에 다시 불쑥 나타난다. 

 

3. 다시 만난, 세이지  

사현에게 'YOU 컴퍼니'라는 게임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 온다. 세이지를 만나줄 수 있냐고. 망설이던 사현은 결국 세이지를 만나러 간다. 상태가 좋지 않아 직접 만나러 올 수 없다는 세이지의 상태가 궁금해서 당장 만나고 싶었지만, 회사 연구소에 도착해 세이지가 있다는 방까지 들어와도 세이지는 볼 수 없었다. 세이지를 보여주는 대신 연구소 직원은 사현에게 가상현실 장치를 착용시켜 준다. 그리고 사현은 자신의 방에서 깨어난다. 

 

조금 이질적이긴 하지만 방의 모습이 너무 현실 같아 사현은 당황한다. 거실로 나가니 소파에 세이지가 앉아 있었다. 연애할 때처럼 젊고 건강한 모습의 세이지. 모든 자극이 너무 생생하여 사현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주저앉는다. 고통을 느끼며 가상현실을 벗어난 사현은 세이지를 직접 만나게 해달라고 화를 낸다. 하지만 사현이 현실에서 만난 건 병실에 누워있는 코마 상태에 빠진 세이지였다.

 

세이지의 의식은 가상현실에서만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가상현실은 세이지가 직접 만든 세상이었다. 세이지는 뇌 상태를 그대로 스캔하여 다른 사람의 뇌를 같은 상태로 만드는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다. 세이지는 목숨을 걸고 유일하게 잘 해낼 수 있는 그 실험에 기꺼이 자신을 맡겼다. 실험은 몇 번의 위험이 있었지만 꽤 성공적으로 흘러간다. 세이지는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깊고 풍부하게 세상을 관측했기에 실험에 매우 적합했다. 반면 사현은 매사에 둔감한 편이었고 그래서인지 세이지가 만든 가상현실에서 고통을 느낀다. 

 

4. 온 세상의 세이지

사현은 다시 세이지의 세계로 가서 세이지를 만난다. 사현은 최대한 가상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세이지와 대화를 나눈다. 세이지는 사현과 아무 걱정 없이 웃고 지냈던 시간이 그리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가상현실 속 사현이 아니라 진짜 사현이 보고 싶었다고 얘기해준다. 가상현실이지만 사현은 세이지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느낀다. 그리고 바다로 간다. 언제가 함께 보았던 겨울의 바다였다. 전에 보았던 바다였지만 그 풍경은 예전과 달리 경이로웠다. 세이지가 보았던 충만한 자유가 넘치는 바다였기 때문이다. 사현은 이것이 세이지가 살아온 세상임을 느끼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온 세상이 세이지였다. 그들은 그제야 제대로 작별할 수 있었다. "잘 가, 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