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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지혜를 얻는 마법의 주문

비욘 나티코 린데 블라드의 저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 대한 리뷰

-도서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 블라드

돌이 쌓여 있는 이미지

1. '비욘 나티코 린데 블라드'에 대해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소위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느끼고 퇴사한다. 그 후 태국 숲 속 사원으로 귀의한 뒤 승려가 되어 '나티코(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17년간 수행한다. 마흔여섯이 되어 사원을 떠나 환속한 후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한다.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게 되어 힘들게 투병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하다 2022년 세상을 떠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나티코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2020년에 출간되어 30만 부 이상 판매되고 여러 나라로 판권이 수출되며 많은 사랑을 받는다.

2. 알아차림(awareness)

특별한 끌림이나 계획은 없었지만 나티코는 유망해 보이는 경제학 학위과정을 밟는다. 스물세 살에 학위를 받고 거대 다국적 기업에 입사한다. 지원해주는 차량도 있고 전담 비서도 있었다. 겨우 만 스물여섯에 임원으로 지명되어 최연소 재무담당 최고책임자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성공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티코는 누가 봐도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치열하게 일하며 내면이 점점 고갈되어감을 느낀다. 소파에 누워 있어도 다가올 업무에 대한 불안이 덮쳐와 진정한 쉼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감각에서 벗어날 방법을 궁리하다 충동적으로 명상을 해보게 된다. 내면을 들여다보며 어떤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직장을 그만두고 다 내려놓기로 결심한다.

나티코가 명상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큰 의미를 가져다주었고 더 깊이 들어가 자신을 마주해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내면에 귀 기울인다고 하여 엄청난 정신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에 매몰되지 않게 되고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꽉 쥐고 있는 손을 활짝 펴듯이 생각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 호흡에 집중하고 내면에 귀 기울이면 훨씬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연습을 통해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현재에 집중하면 사소한 생각에 마음을 뺏기지 않게 된다. '알아차림'은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 느낌, 신체 감각 등 의식하지 못하던 것들을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된다. 명상을 시도하면 대부분 사고 과정이 제멋대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생각은 생각일 뿐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면 된다. 생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생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내면의 작용이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내적 비평을 없애고 서로 돕고, 나누며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된다. 내면의 의식을 제대로 바라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않으며, 선택한 곳으로 주의를 쏠리게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내면에 참된 친구이자 동반자를 두게 된다.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다.

3. 마법의 주문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나티코는 1992년 태국에 있는 국제 숲 속 사원 '왓 파나나 찻'으로 간다. 거기서 수행하며 '나티코'라는 승명을 부여받는다. 승명을 부여받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낯선 사람들과 종일 생활하게 된다. 공동체 생활은 그 자체로 수행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기면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와 더 편하게 지내고 싶다면,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방법밖에 없다. 우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우리 뜻대로 바꾸려고 한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고집하며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서로에게 더 너그러워진다.

어느 날 주지 스님 '아잔 자야사로'로부터 마법의 주문을 배운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려고 할 때 외는 주문이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라고 진심으로 세 번을 외는 것이다. 이 주문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건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우리의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길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지혜가 생겨날 것이다.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대부분 자발적인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우리는 스스로 고통을 초래한다. 마음의 고통은 우리의 마음에서 움튼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고통을 새로운 방법으로 바라볼 수 있다. 고통스러운 생각은 꽤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거기에서 벗어나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고통이 마음에 뿌리박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고 자신이 품은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그제야 고통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손동작을 연습해보자. 주먹을 세게 쥐었다가 힘을 빼고 활짝 펴는 동작이다. 간단한 동작이지만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직관적인 동작이다. 통제를 내려놓고 활짝 편 상태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불안해하는 대신,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한다. 과거나 미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각은 살아가는 내내 큰 짐이 될 것이다. 그 짐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4. 나를 사랑하는 마음

나티코는 2008년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숲속 사원 승려의 삶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귀속은 깨달음을 통한 결정이었지만 나티코는 1년이 넘게 고통을 겪는다. 17년이 지난 세상은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고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칩거한다. 하지만 고요함 속에 수행하던 것을 기억하고 내면의 평온을 찾아내어 세상으로 발을 내디딜 힘을 얻는다. 귀속하여 어려움을 겪었지만, 거기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도 찾고 평온한 삶을 살던 나티코는 갑작스레 루게릭병을 진단받는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면서 슬픔을 느끼지만 분노하지는 않는다. 질병에 분노하지 않고, 신이나 운명에 분노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절망을 물리치고 죽는 날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몸이 기능을 잃어가는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것만이 명확한 사실이다. 그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지 않으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삶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날 수 있다. 그래서 더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하다.

부처님은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으로 자애, 연민, 희열, 평온을 꼽는다. 이 거룩한 마음가짐은 자신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부터 사랑하고 연민해야 그 방향을 다른 사람으로 돌릴 수 있다. 우리가 맺는 관계 중 진정으로 평생 이어지는 단 하나의 관계는 바로 자신과 맺는 관계이다. 자신을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단점을 용서할 수 있는 관계라면 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의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은 것은 다른 누가 평가해서가 아닌 바로 내가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두려운 일들은 무거운 짐이 된다. 자기 이득을 위해 남을 속이지 않고, 해하지 않는다면 어깨 위의 짐은 줄어들 것이다. 그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은 알 테니까. 자신의 말과 행동을 기억하고 짐을 지울지 선택하는 것도 자기의 몫이다. 세상은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통해 보인다. 세상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티코는 17년 동안 승려로 살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다'는 답을 한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거르지 않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수시로 상처받게 될 것이다. 그 상처 때문에 현명한 선택도 하지 못하고 더 큰 절망에 빠질 수 있다. 우리는 의도치 않게 생긴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내려놓는다면 존엄과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